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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오순절 신학의 기원

19세기 영국의 에드워드 어빙의 부흥운동

현대 오순절 운동의 선구자들로는 적어도 19세기의 두 가지 부흥운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첫째 부흥 운동은 1830년의 영국에서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의 사역을 통해 일어났으며, 둘째 부흥 운동은 1860년의 인도 남단에서 플리머스 동포(Plymouth Brethren) 신학의 영향을 받아 아로올라펜(J. C. Aroolapen)이라는 인도(印度) 성직자의 지도 아래 일어나게 되었다. 이 두 가지의 사건에 대한 보고서에는 방언과 예언을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은사가 사도시대와 함께 필연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는 일부의 신념은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 Warfield)가 그의 저서 "Counterfeit Miracles"(1918)에서 "성령의 영감을 받아 객관적으로 기록된 성경의 권위가 성령에 대한 주관적 개념을 가르치는 사람들로 인해 손상되었다."라는 말로 표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최근에 들어 개신교권에서 점차 그 기반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에서의 웨슬리 부흥운동

17세기 말과 18세기에 유럽과 북미에서의 불어닥친 부흥운동의 영향으로 칼빈주의자와 루터교파 그리고 아르미니우스파의 설교자들은 기독교인의 삶에 있어서 특별히 회개와 경건을 강조하였다. 현대 오순절운동은 이 시기에 일어난 영적운동의 연장선상(延長線上)에 있다. 특히 감리교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존 웨슬리(John Wesley)와 그의 동역자인 존 플레처(John Fletcher)가 가르친 '그리스도인의 완전함'(Christian Perfection)에 대한 교리에 주목해야 한다. 웨슬리는 1760년 그의 저서 「그리스도인의 완전함에 관한 소고(A Short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에서 그의 제자들이 삶 속에서 '영적인 새로운 차원'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은혜의 역사는 회개와는 별도의 '이차적(二次的)'인 것으로서 죄의 행위를 일으키는 도덕적 연약함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준다고 하였다.


미국에서의 성결운동

그의 가르침은 미국으로 확산되어 성결운동(聖潔運動)(Holiness Movement)이 성장하도록 영향을 끼쳤다. 성화된 삶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성경에서 유래된 오순절의 모습들, 예를 들면 '성령을 부어주심', '성령 세례', '불의 혀'라는 단어가 성결문학과 찬송의 주제가 되었다. 감리교인으로서 웨슬리 진영의 성결운동의 최고지도자들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피비 파머(Phoebe Palmer)는 '성결에로의 인도(Guide to Holiness)'를 편집하였고, '아버지의 약속(The Promise of the Father)'등과 같은 책을 1859년에 저술하였다. 또 다른 저명한 작가였던 윌리엄 아서(William Arthur)는 1856년에 베스트셀러 「불의 혀(Tongue of Fire)」를 남기게 되었다. '두 번째 축복(second blessing)' 즉 성령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留)하라"(눅 24:49)는 말씀대로 '새로운 능력을 대망(待望)하며' 그것을 '받을 때까지 기도해야 하며' 그것을 '받지 못하면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다'고 믿는다. 성령 세례를 받으면 본래적으로 갖고 태어난 죄의 권세를 부수며, 성령충만한 삶으로 인도해 준다. 구약의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이 부어질 때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하게 될'(욜 2:28)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챨스 피니와 드와이트 무디 그리고 R. A. 토레이

은혜의 이차적(二次的)인 역사에 대한 믿음이 감리교권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는 "성령 세례가 그리스도인의 완전함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의 부여"라고 믿었다. 비록 역사적으로 개혁교회가 성령 세례를 개종과 동일시(同一視) 해왔다 하더라도 그 전통 속에서 몇몇 부흥운동가들 즉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나 토레이(R. A. Torrey)같은 사람들은 신자들에게 권능을 부여해 주는 이런 이차적(二次的)인 하나님의 역사(役事)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인과 선교사 연맹 창설자 A.B.심프슨


심프슨이 보완한 성화론은 하나님의 성회 신학의 기초


한편, 이러한 권능이 부여된다 하더라도, 성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는데 그 중심 인물로는 장로교인이었던 심프슨(A. B. Simpson)을 들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과 선교사 연맹'(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을 창설하였고, 성령 세례를 강조하였으며, 하나님의 성회 신학의 초석을 놓았던 인물이 되었다. 그는 오순절 성령세례를 재현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오순절 신학의 초석을 놓았던 사람이다.




영국의 케직사경회

1875년에 영국에서 시작된 케직(Keswick)사경회(査經會)도 미국의 오순절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케직의 교사들은 성령세례야말로 '성령충만'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지속적인 승리의 삶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성령세례가 '무죄한 완전'을 가져온다는 사상을 웨슬리주의자 보다 더 선호하였다.


독일에서의 치유운동

19세기 들어 의학이 점차 발전하였지만 심각한 질병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당시 교회는 육체적인 치유를 가져오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권능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육체적 치유를 주장하는 교회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19세기에 독일에서 병자를 위한 기도를 부각시킨 사람들이 있는데 도로테아 트루델(Dorothea Trudel)과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Johann Christoph Blumhardt)와 오토 슈토크마이어(Otto Stockmayer)가 미국에서 더 관심을 끌게 되었다. 죄로부터의 즉각적인 정화 또는 영적인 권능의 부여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던 부흥사들에 의해 믿음을 통한 직접적인 치유에 대한 긍정적인 환경이 조성되었다.


미국에서의 치유운동의 확산

성령세례는 많은 신자들에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가졌던 영적인 관계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었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한층 더 높은 성결의 삶은 타락이 갖다주는 물리적•정신적 영향을 없애줌으로써 신자들로 하여금 질병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과 권능을 갖게 해 주었다. 찰스 컬리스(Charles C. Cullis)와 심슨(A. B. Simpson), 고든(A. J. Gordon)과 케리 주드 몽고메리(Carrie Judd Montgomery), 마리아 우드워드 이터(Maria B. Woodworth Etter)와 존 알렉산더 도뷔(John Alexander Dowie)와 같은 치유사역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의 근거를 신약성경의 치유에 대한 약속은 물론 이사야서 53장 4절에서 5절 말씀에다 두었다. 그리스도는 '죄를 담당(sin bearer)'하실 뿐만 아니라 '질병도 담당(sickness bearer)'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약속을(출 15 : 26) 믿으며 사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의학적인 도움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만일 그들이 의학의 도움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신앙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순절 성령운동의 방향 정립

미국을 휩쓸고 있던 '그리스도인의 완전성'을 추구하던 성결운동에 심프슨이 주창한 '점진적인 성화론'이 폭넓게 지지되면서 영적운동에 일대 방향전환이 왔는데 그것은 구령(救靈)을 향한 선교운동으로 나타났고 교회는 그같은 영적사업에 매진할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의 원천(源泉)인 '오순절 은사은동' 에 주력하게 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교회가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초대 교회와 함께 마감되어졌다고 가르친 반면에 오순절주의자들은 치유 및 방언 그리고 다른 은사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실현 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이제 오순절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불신앙 외에는 신약교회가 성결과 권능 속에서 재건되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하딘 어윈의 삼차적(三次的) 은혜와 불타오르는 사랑의 세례

그러나 1895년에 급진적인 웨슬리 성결운동의 설교자였던 벤자민 하딘 어윈(Benjamin Hardin Irwin)이 은혜의 세 가지 역사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하자 말썽의 소지가 드러나게 되었다. 어윈에게 있어서 이차적(二次的) 은혜는 성화를 일으키는 것이지만 세 번째 은혜는 '불타오르는 사랑의 세례(baptism of burning love)'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성결운동의 주류측에서 이러한 '세 번째 은혜'에 대한 주장을 이단으로 정죄하게 되었고 "두 번째 은혜인가? 세 번째 은혜인가?"라는 격론이 일게 되었다. 그것의 진위(眞僞) 여부를 떠나서 어윈의 '세 번째 은혜'에 대한 견해는 오순절운동에 있어서 '기독교인의 봉사'라는 새로운 차원에 눈을 돌리도록 해준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하나님의 성회의 설립

Charles. F. Parham
1901년 1월 1일, 벧엘성서신학교의 새아침

1901년은 개신교사(改新敎史)를 일신(一新)하는 신기원의 해라 일컬을 수 있다. 당시 감리교 부흥사이었던 파함(Charles. F. Parham)목사가 1900년 10월에 칸사스주 토페카시에 벧엘성서신학교를 설립하여 40여명의 학생들에게 그리스도는 구세주이며 신유의 주님이신 것을 가르쳤다. 이 학교의 특징은 교재를 오직 성경만으로 사용하였는데 때마침 그들은 사도행전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 해 마지막 무렵에 교장인 파함은 인근에 있는 도시로 천막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3일간 학교를 떠나면서 학생들에게 “성령세례의 증거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작성케 하였다.


찰스 F.파함(1873-1929)파함은 '사도적신앙(THE APOSTOLIC FAITH)'이라는 강력한 복음전도 운동을 이끌었다.
그런데 교장이 학교에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학생들은 이 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성령세례의 성경적 증거가 방언'이라는 결론이었다. 물론 교회사를 보면 방언을 말했다는 기사가 없지는 않으나 그들은 다만 방언을 은사로만 인식하였을뿐 성령 세례의 증거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신학생들은 성령 세례의 증거가 방언임을 굳게 믿고 3일간 밤낮을 쉬지 않고 성령 세례를 구했으며 드디어 1901년 1월 1일 새벽 여명이 밝아올 무렵, 오즈맨(Agnes Ozman)이라는 여학생이 맨먼저 방언을 하게 되었다. 이어서 다른 신학생들도 성령을 받고자 하는 불타는 마음이 생겨 열심히 기도하던 중 한사람 한 사람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충동이 생겨 길거리로 뛰쳐나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고 학생들의 손으로 세 개의 새교회를 세우게 되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성회의 효시(嚆矢)이며 20세기 성령 운동의 시발인 것이다.
파함이 세운 벧엘성경학교가 들어있던 STONE'S MANSION(1900)이 학교 여학생 오즈맨이 1901년 새해 아침에 맨먼저 방언을 함으로써 현대 오순절운동의 도화선이 된다



아주사 거리 부흥운동Stone Mansion
20세기 벽두에 성령세례를 허락하신 것은 '말세에 늦은 비 성령을 부어 주시리라'는 예언이 적중한 것이니(욜 2:23), 초대교회에 이른 비가 내린 후 19세기까지는 별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가 20세기가 밝아오는 1월 1일 새벽에 성령의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이것이야말로 20세기가 늦은 비 성령의 시대이며 또한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시대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20세기 성령운동의 진원지 토페카시에서 발생한 이 불길은 들불처럼 퍼져나가 그 해에 칸사스, 오크라호마, 미조리, 텍사스주에 퍼지게 되었으며, 1906년에 캘리포니아주의 로스엔젤레스에서 강한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파함은 1905년에 휴스톤에 또 하나의 신학교를 설립하여 복음적인 전도자를 양성하였는데, 윌리암 셰이모어(William J. Seymour)가 성령세례를 받아 오순절적인 전도자로 전환되었으나 그가 속해있는 교단에서는 설교할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러자 그는 어떤 굴레에 매여 복음을 바로 전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자유스러운 입장에서 복음 그대로를 설파함이 옳은 것이라 믿어 1906년 로스엔젤레스 아주사(Azuza)거리에서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것이 저 유명한 1906년의 아주사의 성령운동이다.
Azusa
이 부흥회는 1주간이나 또는 1∼2개월에 끝나는 집회가 아니었으며, 7년간이나 계속된 새로운 차원의 부흥회였으니 이 집회는 어떤 프로그램도 없었으며 찬양이나 광고도 하지 않았고 폐회선언도 없었다.(사진: 아주사 거리 부흥운동을 일으킨 진원지(1905))



씨무어는 1906년 부터 로스엔젤레스 이주사거리에서 무려 7년동안이나 계속된 오순절적인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다만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찬미하며 기도하고 설교하며 매일 밤낮 쉬지않고 모이고 또 모여 은혜를 받았다. 날마다 성령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났고 그 결과 이 소문이 사방에 퍼져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성령을 받았으며, 그들은 다시 제 고장으로 돌아가서 성령운동을 일으켰다. William J. SeymourWilliam J. Seymour캘리포니아, 시카고, 캐나다, 뉴욕, 죠지아, 프로리다 등지에서 오순절운동이 속속 전개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무렵에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 한국 등지에서도 성령의 강한 역사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평양에서 일어났던 1907년도의 부흥운동을 그 실례로 들 수 있겠다.
(사진: 이주사 부흥의 사람 씨모어와 그의 오순절 운동의 동지들)









20세기 오순절 성령운동의 중핵(中核) 하나님의 성회의 탄생

말씀과 증인(Word and Witness)지(誌)의 편집인이었던 벨(E. N. Bell)목사는 1913년 12월 20일자 지면(誌面)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in Christ)들과 오순절적 성도의 총회 소집에 대한 광고를 게재하여 1914년 4월 2일부터 12일까지 알칸사스주 핫 스프링(Hot Spring)시에서 열릴 것을 알렸다. 그들이 총회를 개최하게 된 목적은 성령받은 오순절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연합하고 협력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반목•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를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전진을 위하여 협력하고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려 하였다(엡 4:3). 말씀과 증언지에 실렸던 하나님의 성회소집 공고는 다음과 같다.

총회일시 : 1914년 4월 2일 - 12일
장 소 : 알칸사스주의 핫 스프링(hot spring)
회의성격 :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과 오순절적 성도들의 총회(convention) 미하나님의 성회의 창립총회의 목적은 다음의 다섯 가지이었다.


첫째, 분열과 불화를 피하기 위해 가르침과 설교의 어떤 표준을 설정할 필요성과 오순절 백성들이 여러 이름 아래서 일하는 것을 피하고 하나의 이름을 선택할 필요성이 있다.

둘째, 하나님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어떤 관례를 제정하여야 할 필요성과 분열하는 대신 하나되고 세우는 일에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셋째, 해외선교의 필요성을 잘 이해하며 효과적인 해외선교의 의미와 방법을 연구하는데 전력을 쏟아야 한다.

넷째, 교회재산의 보존과 교회 사업수행을 위한 각 주(State)와 전국적인 법률을 제정하여 오순절 역사의 다른 분열을 없애기 위해 하나의 이름으로 법인체를 설립할 것을 제의한다.

다섯째,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 하신 주님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을 수행하기 위해 교역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 설립과 문서출판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며 이러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William J. Seymour
(사진:1908년로즈웨 플라워 목사가 작성한 <사도신앙목록>)

1914년 4월 2일, 미국 20개 주에서 300명 이상의 대의원(Deligate)들이 알칸사스주의 핫 스프링에 모였다. 총회장소는 핫 스프링시의 중심가(Central Avenue) 200번지에 위치한 오래된 그랜드 오페라 하우스이었다. 그곳에는 미국의 20개주에서 모여온 총대들 뿐 아니라 해외에서 참석한 대표들도 있었다. 제일 연소한 사람은 18세인 랄프 리그스(Ralph Rigs)라는 청년이었는데, 그는 1953∼1959년까지 미하나님의 성회 총회장이 되어 교단 발전에 지대한 공을 남기게 된다.

창립총회의 대의원 명부에는 남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Johnnesburg)에서 온 레이크(John. G. Lake)라는 오순절 신앙인의 이름도 기재되어 있으며, 두 사람의 주요한 잡지사의 편집인도 참석하였는데「말씀과 증언」(Word and Witness, 알칸사스주의 Malbarn에서 발행된 잡지)의 편집인 벨(E. N. Bell)목사와 「크리스챤 복음지」(Christian Evangel, 인디아나주의 Plainfield에서 발행된 잡지)의 편집인인 플라워(J. R. Flower)목사 등이다.

또한 후에(1915∼1919, 1923∼1925) 총회장이 되어 교단발전에 크게 기여한 웰취(J. W. Welch, 칸사스주의 Baxter Springs교회의 담임)목사와 1925∼1929년까지 총회장을 지낸 갯슨(W. T. Gatson, 오클라호마교회의 목사)도 참석했으며 멀리 이집트에서 온 크러치(J. Crouch)목사도 있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회는 탄생 때부터 국제적인 규모로 출발하였다. 총회 개회설교는 핀슨(M. M. Pinson)목사가 하였는데 사도행전 15장을 본문으로 하여 교리적인 몇 가지 문제와 칭의(Justification)에 대해 말씀을 증거하였다. 이어서 사흘동안 은혜받는 성회가 계속 되었으며 그 성회를 통해 성령충만 받은 성도들이 핫 스프링 시가지로 나가 질서정연하게 가두행렬(Parade)을 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미국의 하나님의 성회 총회는 총회가 개최되는 도시 전체를 축제의 장(場)으로 바꾸는 놀라운 사건이 된다. 사무총회는 4월 6일부터 시작되었는데 벨(E. N. Bell)목사가 임시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플라워(J. R. Flower)가 임시서기로 선출되었다.


그 창립총회의 중요한 결의사항은 다음과 같다.

1. 교단 명칭을 하나님의 성회(The Assemblies of God)라 한다. 개교회 명칭은 ○○○ Assembly of God으로 부르기로 한다.

2. 총회(The General Gouncil)는 회무를 처리하는 모임이고 정치제도는 회중적 합의제(Congregational Agreement)를 채택하여 개교회의 자율성을 중요시 한다. (즉 감독제도나 중앙집권제를 배제하고 개교회 중심제를 채택한 것이다)

3. 총회본부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12명의 실행위원(Executive Presbytery)을 두기로 하고 이를 선출한다.

4. 총회장에는 벨(E. N. Bell)목사를 선출하고 총무에는 플라워(J. R. Flower)목사를 선출한다.

5.「말씀과 증언」과 「오순절 복음」(Pentecostal Evangel)을 교단지(敎團誌)로 인준한다.

6. 핀드레이에 있는 신학교를 교단 신학교로 인준했으며 벨목사와 플라워목사를 교수로 인준한다.
(사진: 창립총회가 열렸던 핫 스프링스 오페라 하우스(1914))


창립총회에서 초대 실행위원으로 선출된 12명의 목사는 다음과 같다.

1. E. N. Bell(아칸사주의 Malvern시)
2. A. P. Collins(텍사스주의 Fort Worth시)
3. R. L. Erickson(이리노이주 Chicago시)
4. J. R. Flower(인디아나주 Indianapolis시)
5. C. B. Fockler(위스컨신주 Milwaukee시)
6. H. A. Goss(알칸스사주 Hot Springs시)
7. D. W. Kerr(오하이오주 Cleveland시)
8. T. K. Leonard(오하이오주 Findlay시)
9. D. C. Opperman(텍사스주 Huston시)
10. M. M. Pinson(아리조나주 Phoenix시)
11. J. C. Sinclair(이리노이주 Chicago시)
12. J. W. Welch(칸사스주 Baxter Springs시)

(사진:교단 창설의 주요 멤버들과 그뒤로 대의원들)

이상의 열두 사람이 미(美) 하나님의 성회 초창기의 중요 인물들이었으며 그들은 교단발전을 위해 크게 헌신한 충성스러운 주님의 일군들이었다.



3. 하나님의 성회의 신학

하나님의 성회의 교리적 일치

E.
1914년 4월 알칸사스주의 핫 스프링즈(Hot Springs)에서 열린 하나님의 성회 교단총회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성회의 교리적 일치를 이루는 총회였다. 이 일치는 오순절 신앙이 역사적 진리 위에서 형성되었으며 웨슬리적 성결운동과 케직운동의 신념적 주제들로 인해 더 빛나게 되었다. 1919년에 이 오순절주의자들의 신앙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을 때, 원로단의 한 일원이자 초대 의장이었던 벨(E. N. Bell)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우리(하나님의 성회)의 모임은 모든 급진적인 성경의 고등 비평을 반대하며, 교회내의 모든 근대주의(Modernism)와 불신앙에 대항하고 있으며, 교회 안에 속해 있으나 구원받지 못하고 죄와 세속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또한 우리들은 모든 진정한 복음주의 교회들이 붙잡고 있는 성경의 참 진리들을 믿는다.

(사진: 하나님의 성회 초대 총회장 E.N벨)

그러나 이 첫 번째 교단 총회가 새로운 교파를 위해 신경(信經)을 만들거나 기초를 놓기 위해 열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총회 위원들은 단지 자신들의 관심만 서술하면서, 몇몇 중요한 신념들을 포함하고 있는 "구성에 관한 서론과 결론(Preamble and Resolution on Constitution)"을 채택하면서, 임원들을 선출하고 법인 설립을 승인하였을 뿐이었다.


하나님의 성회의 신학적 특성(特性)

하나님의 성회에 속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기본적인 자세를 견지한다.
개인적 체험존중, 쉬운 의사전달(이것은 교회 잡지나 여러 종류의 소책자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자발성, 내세(來世)지향성 그리고 성서적 권위를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들은 지도력과 생활양식, 예배와 교회문학에 대한 개념 속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또한 이런 가치들은 오순절주의자들만의 독특한 특징이 되는 동시에, 신학을 학구적으로 어렵게 다루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성회는 과감하게 훌륭한 편집자들과 작가들을 발탁하여 정기간행물 및 소책자 그리고 주일학교 교재와 각종 서적들을 만들어 신자들의 성숙을 도와 주었다. 또한 그들은 육체적 치유와 귀신 축출, 약물 중독에서의 해방과 응답받은 수 천가지 기도에 대한 증거 기록들을 실례로 들어가며, 승리의 삶에 대해 설명했다. 성령의 역사에 도전해 오는 모든 시도로부터 자신을 교리적으로 변증하려는 과욕은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런데서부터 자유로운 자세를 견지한 하나님의 성회는 힘써 문서선교 및 성경공부에 치중하였고 평신도 지향성을 항상 보여주었다.
(사진: 하나님의 성회 초대 실행위원들)


근본진리성명(Statement of Fundamental Truths)의 제창(提唱)

1916년 개최된 교단 총회가 통일성 문제(Oneness issue)로 분열되는 위기에 처해 있었을 때 교회 지도자들은 핫 스프링즈의 신경(信經)에 반대하는 반신경(反信經)적인 경향을 버리고 교리적 경계선을 분명히 함으로써 교회의 완전과 성도들의 복된 믿음을 보호해 주었다. 다니엘 케르(Daniel W. Kerr)가 이끄는 지도적인 목사 몇 명이 '근본진리성명'(Statement of Fundamental Truths)을 제창하였는데, 이 성명은 삼위일체에 관한 정통적 견해를 지지하는 항목을 포함하고 있었다.

(사진: 찰스 프라이스가 부흥회를 통새 개심자들에게 침례를 주고 있다.)

근본진리성명(Statement of Fundamental Truths)은 교회의 신경(信經)이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교제에 대한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목회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한 성명에 쓰인 인간적인 문체는 영감으로 된 것도 아니며, 싸워서 얻어진 것도 아니지만, 순복음 목회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 성명이 모든 성경의 진리를 포함한다고 강변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쉽게 우리 믿음의 근본적인 진리들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기 바랄 뿐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오직 하나님(聖父)"을 강조하는 목사들은 모두 그 회의를 떠났다. 삼위일체의 교리에 대한 장황하고 복잡한 설명은 별문제로 하더라도, "하나님의 치유(Divine Healing)"나 "성령세례(Baptism in the Spirit)"같은 교리들은 하나님의 성회가 가지는 그 독특한 특징에도 불구하고 매우 순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근본진리성명'이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목회 성장을 위한 교리의 토대로 이용되기는 하지만 그것이 처음부터 응집성을 지니고 있는 조직신학의 개요를 구성하려는 목적으로 하여 천명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인간의 타락(The Fall of Man)"이란 이름의 항목은 유전적으로 모든 인간이 죄에 빠졌다고 언급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원죄의 의미와 원죄의 세대간 전달 매체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독자들에게 다소의 자유를 주고 있다.


신학의 발전을 이끌어온 저작 및 출판사업 그 후에도 교리를 보존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는데 몇몇 이유로 인하여 이러한 노력들이 앞당겨지게 되었다. 먼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자신의 영향력(權能,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을 높이기 위해서 계속해서 성령충만한 생활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실행위원회에서는 스코필드 관주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에 나타난 반오순절적 주석의 위험성을 발견하고 1924년부터 1926년까지 2년 동안「오순절 복음지」(Pentecostal Evangel)에 그 책을 광고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사진:복음출판사 건물과 함께 한 하나님의 성회 총회본부 미조리주 스프링필드(1918) / Pentecostal Evangel은 수 년 동안 교단의 가장 중요한 출판물로 자리잡았다. 1949년 편집장 로보트커닝햄이 윤전기에서 나온 신문을 펴보고 있다.)

미조리주 스코필드에 있는 복음출판사(Gospel Publishing House)에서 주일학교 교재들을 비롯한 교리적 주제들을 다룬 상당량의 각종 대중적인 서적들을 출판하였다. 이 시기에 출판된 책들로는 도날드 기(Donald Gee)의 「오순절의 현상들」(The Phenomena of Pentecost. 1931), 스탠리 프로드셤(Stanley H. Frodsham)의 「생명수의 강」(Rivers of Living Water. 연도불명)과 릴리안 여만스(Lilian B. Yeomans)의 「하나님의 치유」(Healing from Heaven. 1926)를 들 수 있다. 하나님의 성회의 창립 산파역을 담당하였던 앨리스 레이놀즈 플라워(Alice Reynolds Flower)는「오순절복음」지의 전신인 「크리스챤복음지」(Christian Evangel)에 주일학교 교안(敎案)을 쓰기 시작했다. 이 시기 직후부터 주일학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훈련 프로그램들이 더욱 관심을 끌게 되었다. 성경해석 원리들에 관한 교과서가 오클라호마 에니드에 소재한 하나님의 성회 성경학교의 자매회사인 사우스웨스턴출판사(Southwestern Press)에서 출판되었으며, 에릭 런즈(Eric Lund)의 「성서해석학」(Hermeneutics, 1938)이 넬슨(P. C. Nelson)에 의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성경학교에 참석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순회 설교자들이 커다란 차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교회 강단 앞에 걸어 놓고 회중들에게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일곱 단계를 에덴동산에서의 순결시대로부터 다가올 천년왕국에 이르기까지 성경을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이런 류(類)의 강의교재를 잘 만들던 사람들 가운데 널리 알려진 오순절주의자는 피니스 제닝즈 데이크(Finis Jennings Dake)로서 그의 인쇄된 강의노트와 교재(敎材)들을 포함한 출판물들과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데이크주석성경」(Dake's Annotated Reference Bible, 1963)은 많은 오순절주의자들의 신학을 지속해서 발전적으로 형성해 오고 있다. 영적 생활에 대한 일화(逸話)는 엘리자베스 베이커(Elizabeth V. Baker)와 같은 작가들에 의해 기록되었는데, 몇 가지만 예를 들면,「신앙생활의 연대기(年代記)」(Chronicles of a Faith Life, 1926), 베이커(H. A. Baker)의「천국의 환상들」(Visions Beyond the Veil, 1938), 로버트 커밍즈(Robert W. Cummings)의「겟세마네」(Gethsemane, 1944), 앨리스 레이놀즈 플라워(Alice Reynolds Flower)의「사랑의 충만」(Love Overflowing, 1928)과 같은 책들을 들 수 있다.

찬송가 작사가들이 교리를 전하는데 공헌한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기있는 오래된 가스펠(gospel)과 함께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랑', '나는 가네' 등과 같은 허버트 버펌(Herbert Buffum)의 노래를 찬송으로 불렀다. 아프리카-아메리카 통합 오순절측은 토로 해리스(Thoro Harris)의 노래들 - 예를 들어, '내 영혼을 떨게 하시는 나의 예수님', '더욱 충만하게', '그분께서 곧 오시리' 등을 불렀으며, 헤이우드 주교(Bishop Garfield T. Haywood)의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 '나는 진홍색 피의 강물을 보네'와 같은 노래를 많이 불렀다.


방언을 말하는 것은 성령세례의 필수적인 증거

교리를 보존하기 위한 두 번째 이유로는 성도들이 잘못된 교리에 대한 확실한 답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1916년 이후, 오순절신앙에 대한 위협이 발생하자 총회측은 교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 방언을 말하는 것이 성령세례의 필수적인 증거라는 해석학적인 논쟁이 1918년에 다시 일어나게 되자, 총회측은 그것이 '우리의 독특한 증거'라고 천명(闡明)했다. 나아가 그 다음 해에는 방언을 '최초(最初)의 육체적인 증거(證據)'라고 '근본진리선언'의 제 6 조로 적용하였다. 몇 년이 지난 후, 케르(Kerr)가 이 문제에 대하여 쓴 설득력이 있는 글이 「오순절복음」지(誌)( Pentecostal Evangel)에 실리게 되었다.


정정(正定)된 것들

1916년 총회에서 채택한 '근본진리성명(Statement of Fundamental Truths)'에 대한 수정을 하지 않고 골치아픈 논쟁거리를 설명하고 해결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서 규칙들을 부가(附加)해 나갔다.
법과 법률의 제 8항에서 발견된 '종말론적 오류'라는 부분 속에는 몇 가지 잘못된 점이 보인다. 예를 들어, "만물의 회복"이라는 교리는 하나님의 성회 밖에서 기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펜실바니아주 피츠버그의 저명한 성직자였던 찰스 해밀턴 프릿젼(Charles Hamilton Pridgeon)은 자신의 저서 "Is the Hell Eternal; or Will God's Plan Fail?" 속에서, 지옥은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후에 죄를 정결케하기 위해 한정된 기간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전에는 장로교인이었으며, 신유 즉 믿음에 의한 치료를 주창하였던 프릿젼(Pridgeon)은 1920년대 초에 오순절 교인이 되었으며, 그 뒤로 계속해서 '보편구원설(reconciliation of all things)' 또는 '프릿젼이론'을 주장하였는데, 1925년에 총회측에서는 이것을 이단(異端)으로 정죄하였다. 얼마나 많은 수의 오순절교인들이 프릿젼의 보편구원설을 받아 들였는지에 대한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결국 이것은 공식적인 비난을 당하게 되는 근거가 되었다.


1950년대 이후의 교리 보존

교파별 성경대학과 인문대학에서의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대한 새로운 관심이 높아지는데 발맞춰 교사들은 자신들의 교육을 좀더 깊이 있게 하고자 하는 도전을 받았다. 이것은 성서와 신학 부분에서 점진적인 인적(人的) 변화를 가져왔다. 즉 성서연구와 조직신학과 교회사 분야의 박사과정을 밟은 교사들과 성서해석과 구약, 신약, 신학과 교리와 실천신학의 역사적 발전 등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교사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오랫 동안 두려워했으나, 새로운 교사들은 학문적 연구와 오순절의 영성 사이에 균형을 이룬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사람들 중 하나인 스탠리 호튼(Stanley M. Horton)교수는 코넬(Gordon-Conwell)신학대학원과 하바드신학대학(Harvard Divinity School) 그리고 중앙침례대학원(Central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구약과 성경언어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몇 년뒤, 호튼은 자신의 강의와 책들(예를 들어, '성경은 성령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What the Bible Says About the Holy Spirit, 1976)과 잡지와 간행물, 기사(記事) 그리고 성인을 위한 주일학교 공과 등에 투고함으로써 교단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전문가들이 늘어남에 따라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성회의 독특한 신앙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1970년에 설립된 학회인 '오순절학회'에 가입하였으며 자신들의 신학적 주장을 담은「보혜사 성령」(Pneuma Paraclete, 1967년부터 시작함)과 교단잡지(총회의 독립 계간지 Agora)에 논문을 투고하게 되었는데, 1992년까지는 성령론에만 한정된 것들로서 학문적 토론의 하나의 장(場)을 이루었고 그 성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사진 1913년 world-wide camp meeting 에서 사용된 찬송집 표지: R.J스코트가 편집하였다.)

인간과 성령의 사역과 관련된 학문적인 연구들로는 고든 피(Gordon D. Fee)가 쓴 "Commentary of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고린도전서 주석,1987)와 스탠리 호튼(Stanley M. Horton)이 쓴 "The Book of Acts"(사도행전,1981)와 캐나다의 오순절 성회의 목사인 로저 스트론스타드(Roger Stronstad)가 쓴 "The Charismatic Theology of St. Luke"(누가의 은사론,1984) 등을 들 수 있다.

오순절 전통과 관련된 특별 논쟁에 대한 연구보고서는 로버트 브란트(Robert L. Brandt)와 제나스 비켓(Zenas J. Bicket)가 쓴 "The Spirit Helps Us Pary : A Biblical Theology of Prayer"(성령이 우리의 기도를 돕는다,1993)를 들 수 있으며, 머레이 뎀스터(Murray Dempster)와 바이런 클라우스(Byron D. Klaus)와 더글라스 피터슨(Douglas Peterson)등이 공저한 "Called and Empowered : Global Mission in Pentecostal Perspective(오순절 관점에서의 세계선교,1991)"를 들 수 있다. 또한 게리 맥기(Gary B. McGee)가 쓴 "Initial Evidence : Historical and Biblical Perspectives on the Pentecostal Doctrine of Spirit Baptism"(성령 세례에 대한 오순절주의의 역사적•성서적 관점,1991)" 등을 들 수 있으며, 오랄 레딘(Oral L. Reddin)이 쓴 "Power Encounter : A Pentecostal Perspective"(오순절적 관점, 1989)와 엘딘 빌라파네(Eldin Villafa e)가 쓴 "The Liberating Sprit : Toward an Hispanic American Pentecostal Social Ethic"(미국 오순절주의의 사회윤리에 대하여, 1992) 등을 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기온출판사(Logion Press), 복음출판사(Gospel Publishing House)의 새로운 경향의 대학교재와는 별도로, 교단 및 개교회에서는 대중적으로 쓰여진 교재를 여전히 선호하였다.

최근에 출판된 "Bible Doctrines : A Pentecostal Perspective(성경교리 : 오순절적 관점,1993)"은 윌리암 멘지스(Willam W. Menzies)와 스탠리 호튼(Stanley M. Horton)이 썼는데 이 책들은 성인용 주일학교 또는 대학원 과정을 대상으로 믿음에 대해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복음출판사(Gospel Publishing House)와 국제생명출판사(Life Publishers International)에 의해 출간된 하나님의 성회에 관한 수많은 출판물들은 성경연구와 제자훈련과 목회자들을 위한 실제적인 공부에 대부분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ICI 대학과 베레안 대학(Berean College) 출판물도 마찬가지로서 전문적 사역을 위한 후보자는 물론 평신도들에게도 이수 및 비이수 프로그램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수많은 출판사들을 통해 발간된 많은 출판물들도 교리에 대한 또다른 학문적인 개관을 담고 있는데 그 예는 다음과 같다. 즉 존 히긴스(John R. Higgins)와 마이클 더싱(Michael L. Dusing)과 프랭크 탈만(Frank D. Tallman)이 쓴 "An Introduction to Theology : A Classical Pentecostal Perspective"(고전적 오순절 관점,1993)과 평이하게 쓰여진 "Concerning Spiritual Gifts"(성령의 은사에 대한 관심,1928)과 도날드 기(Donald Gee)가 쓴 "Trophimus I Left Sick"(내가 남긴 아픔,1952)을 들 수 있다.
이외에도 켈크너(H. B. Kelchner)가 쓴 "Living Your Christian Life NOW in the Light of Eternity"(영생의 빛 안에서 당신의 삶,1960)와 제시 문(Jesse K. Moon)이 쓴 "Divine Healing and the Problem of Suffering"(거룩한 치유와 고통문제,1976)와 헨리 네스(Henry H. Ness)가 쓴 "Dunamis and the Church"(영적폭발과 교회,1968)와 안토니 팔마(Anthony D. Palma)가 쓴 "The Spirit - God in Action"(성령-행동하시는 하나님,1974)과 영적 생활에 대한 글은 에디트 블럼호퍼(Edith L. Blumhofer)의 "Pentecost in My Soul"(내 영혼의 오순절,1989)과 같은 책을 들 수 있다.

데이빗 플라이스(David J. du Plessis)가 쓴 "Grace for Grace"(은혜 위에 은혜,1961)와 대나 카그텔(Daena Cargne)이 쓴 "Although the Fig Tree Shall Not Blossom"(비록 무화과 나무가 꽃피지 않아도,1976)와 같은 책은 신자들의 마음 속에 있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임재하심에 대한 강조로 인해 흥미를 끌게 되었다.

주간지인「오순절 복음」(Pentecostal Evangel)과 목회자용 월간지인「전진」(Advance) 속에는 이러한 특성에 대해 부가적인 영감과 교훈을 제공해 준다. 작사가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경배와 교훈을 나누는데 사용하였다. 저명한 작곡가였던 이라 스텐필(Ira Stanphill)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확신과 평강을 주기위해 "Mansion Over the Hilltop"(언덕 위의 집)과 "Room at the Cross"(십자가의 방)과 "I Know Who Holds Tommorrow"(나는 내일을 개척한 사람을 아네)와 같은 노래로 성도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였다. 작곡가들이 오순절 운동 초기부터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오순절주의자들이 사도신경이나 니케아신조를 배운 적이 전혀 없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옛부토 전해오는 노래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기억들은 오순절신학이 구전(口傳)으로 전해 내려온 것을 입증해주는 명백한 증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하나님의 성회, 그리고 탄탄한 신앙적 교리

1940년대 이후로 많은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은 오순절주의자들과 자신들의 신학적 공통점이 차이점보다 많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과의 교제와 협력을 환영하며 수용하기 시작하였다. 1942년 NAE(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가 창립될 때, 하나님의 성회를 회원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미국 교회의 주요 흐름 속에 오순절주의자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성회의 성령론과 신학적 인류학(theological anthropology)의 아르미니우스적인 성향(Arminian nature of its theological anthropology)에 대한 오랜 의심으로 인해 그 관계가 희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가 오순절주의 신학에 끼친 영향은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짐머만(Thomas F. Zimmerman)이 NAE의 의장으로 선출된 후(1960-1962) 1961년 총회에서 '근본진리선언'(the Statement of Fundamental Truths)에 약간의 수정을 가했다.

(사진: 제 9대 총회장 짐머만 1972년)
그는 하나님의 성회 총회장을 역임하고 국제 복음주의협의회의장이 됨으로 오순절운동의 보편적인 확산을 꾀했다. 가장 중요한 개정은 "영감으로 쓰여진 성경말씀(The Scriptures Inspired)"이라는 부분에서 이루어졌다. 1916년도 판에는 "성경은 영감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지는 계시이며 믿음과 행위에 대한 오류가 없는 법칙이며, 이성과 양심보다 더 뛰어나지만, 이성과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되어있다. 이것을 NAE내의 복음주의자가 즐겨쓰는 단어들로 변경하였다. "말씀은 구약과 신약 모두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인간의 언어로 쓰여졌으며,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여주신 계시이자, 오류가 없으며 믿음과 행위에 대한 권위적인 법칙(rule)이다." 총회가 설립된 이래로 하나님의 성회 회원들은 말씀의 영감과 무오성(無誤性)을 믿어왔다. 그러나 오순절주의자들이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그리스어 : theopneustos)이라는 표현을 가지고 '말씀의 영감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관한 문제는 더 연구되어야만 할 것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하나님의 성회는 미국내 뿐만아니라, 대양을 건너서까지 주요(主要) 교단 중의 하나가 되었다. 교리에 도전하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할 때, 교회 지도자들은 그 문제들을 설명하기 위해 성명서를 발표함으로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헌법(교리)을 수정하거나 1916년의 '근본진리선언'을 수정하지는 않았다. 1970년대초 "성경의 무오류(無誤謬)"(The Inerrancy of Scripture)의 출판(장로교의 지지를 받았다)으로 인해, 20여회가 넘는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그 주제들로는 하나님의 치유와 창조, 묵상과 이혼, 재혼과 성령세례의 육체적인 초기 증거, 낙태와 하나님의 왕국, 여성의 목회참여 등을 다루고 있다. 최근 수년 동안에 신학적 발달을 지켜보기 위해 설립된 총회의 "교리보존위원회" (Doctrinal Purity Commission)의 회원들이 성명서를 내기도 하였다. '성명서(聲明書)'라는 방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성회의 신앙이 무엇인가를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그 성명서들 가운데 "하나님의 치유를 의학적인 처치와 반대되는 위치에 놓거나 경쟁적인 위치에 놓으려 하였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다. 의술을 통해서 의사들은 많은 사람들을 도와 주었다."고 말함으로써 원래 표명하던 신념에서 다소 전이(轉移)된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1949년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가졌던 총회 /1967년 캘리포니아주 롱비취에서 열렸던 정기총회에서 새롭게 구성된 실행위원들이 대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4. 하나님의 성회 선교의 원동력(原動力)

후(後)천년설과 전(前)천년설의 영향(影響)

19세기의 강단에서는 전반적으로 무천년설(無千年說) 아니면 후천년설(後千年說)을 설교했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정신을 장악한 것은 후천년설(後千年說)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론으로 세상을 뒤흔든 찰스 다윈(Charles Darwin)에서부터 존 헨리 뉴맨(John Henry Newman)과 찰스 하지(Charles Hodge)에 이르는 저자들은 과학에서, 교리 형성에서, 그리고 종말론에서 '진보(進步)'라는 긍정적인 가치를 보고 인류에게 낙관적(樂觀的)인 이상(理想)을 심었다.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앞두고 인류의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결론 짓기도 하였다. 세계복음화에 헌신한 사람들은 임박한 종말에 대한 전천년설주의자들의 비관적(悲觀的)인 평가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나타냈다.

당시의 선교는 학교나 고아원 혹은 병원 건축과 같은 원주민의 문명화(文明化)를 통해 원주민의 개종(改宗)을 준비하는 것에 선교활동의 상당량에 해당하는 시간과 돈과 정력을 쏟아 부었다. 이러한 방식의 선교는 서구문화에 대한 원주민의 문화종속을 가져왔으며 실제 개종자의 수가 그렇게 많이 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다니엘서와 스가랴서 그리고 계시록에 대한 전천년설의 해석 및 시온주의 운동의 발생, 1890년대의 군비경쟁과 다가오는 세기말적(世紀末的)인 위기감으로 인해 아직도 복음을 접하지 못한 수백만의 사람들을 어떻게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을까 하고 진지하게 기도하는 선교그룹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성회의 선교적 특색

하나님의 성회는 탄생부터 '사중복음(四重福音 - 중생, 성령세례, 신유, 재림)'을 기치로 들고 구원자와 세례자, 치유자와 왕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종말의 날에 사람들의 영혼 속에 회복하고자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심지어 방언 은사(方言 恩賜)가 세계선교를 위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사진: 각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의 기도요청 카드)

"다른 나라에서의 복음선포를 위해, 선교적 복음주의를 촉진하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공유(公有)할 수 있는 언어인(크세노랄리아 xenolalia) 방언의 은사를 주셨다." 선교 사역에서의 방언 사용을 주장한 사람으로는 '성령과 미국성경학교(Holy Ghost and U.S. Bible School)'를 설립한 프랭크 샌드포드(Frank W. Sandford)를 들 수 있다. 그는 「불의 방언」(Tongues of Fire)지(誌) 통해 "세계를 빠르게 복음화시키기 위해 방언은사는 매우 유용한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캔사스 성결 운동의 설교가였던 찰스 폭스 파함(Charles Fox Parham)과 그의 제자들은 세계를 빠르게 복음화하기 위해 성령의 능력을 받기 원했다. 어윈(Irwin)과 샌드 포드(Sandford)의 영향을 받았고, 사도행전에 대한 그들의 연구를 통해 확신을 얻게 된 파함(Parham)은 1901년 1월에 캔사스주 토페카에 있는 베델 연구학교(The Bethel Bible School)에서 있었던 어떤 부흥운동에 대해 보고하였다. 대부분의 학생들과 파함은 성령 세례를 받고 방언(즉, 크세노랄리아 xenolalia)으로 말할 수 있게 된 것을 무척 기뻐하였다. 오순절날 하나님께서 120문도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신 것과 똑같이 그들도 사도행전 2장 39절의 약속을 받게 된 것이었다.


<스프링스에 있는 미 하나님의 성회 총회본부>


드디어 신약교회의 "사도적 신앙(Apostolic Faith)"이 완전하게 회복되었다. 후에 베네트 프리맨 로렌스(Bennett Freeman Lawrence)는 오순절 운동의 첫 역사를 '회복된 사도적 신앙'(The Apostolic Faith Restored, 1916)이라고 불렀다.
오순절운동에 끼친 파함의 독특한 신학적 공헌으로는, 은혜의 세번째 역사의 생동적인 "성경적 증거(Bible evidence)" 즉 사도행전 2장, 10장, 19장에서 명백히 예증되어 나타나고 있는 성령 세례를 대표하는 것이 방언이라고 주장한 점을 들 수 있다. 파함은 자신의 저서「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Voice Crying in the Wilderness. 1902, 1910)에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은 고린도후서 1장 21, 22절, 계시록 21장에서처럼 "그리스도의 신부(bride of Christ)"로서 인침을 받는다고 말했다.

파함은 마지막 때에 선택된 선교사들로서 성별되어 준비받고 있는 그들만이 지상명령(Great Commission)을 완수한 후, 대환란 직전에 휴거에 참여하게 될 것이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뒤이어 올 7년 대환란 동안에 생존해야만 하는 시련을 맞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러한 주장이 오순절운동의 가장자리로 물러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성회는 그 초창기부터 오순절적인 부흥운동과 더불어 강력한 선교운동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것이다.


종간의 화해, 신분 차별의 붕괴

토페카의 부흥운동은 나중에 세계적으로 중요한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아주사거리 부흥운동(Azusa Street revival 1906∼1909) 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 부흥운동의 선두적인 지도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던 윌리암 세이모어(William J. Seymour)였다. 세이모어의 소식지였던 「사도적 신앙」(Apostolic Faith)과 아주사 거리의 집회에서 북미를 거쳐 해외로 나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요엘서 2장 23절의 "늦은 비(latter rain)"에 대한 소식이 국외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비록 시온(ZIon, I11.)과 토론토(Toronto)와 노스캐롤리나 던(Dunn, N.C.)의 부흥 운동같은 다른 중요한 오순절 부흥운동들도 일어났지만, 로스엔젤레스 부흥운동이 지닌 복합성과 의미는, 여전히 역사가들에게도 도전을 주고 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을 따라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백인 오순절주의자들은 그 부흥운동의 주제인 종말론적 주장과 파함의 유산인 복음전도 능력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에 반하여 아프리카계 미국인 오순절주의자들은 인종간의 화해에 대해 그리고 아주사의 학대받던 사람들 위에 성령의 능력이 부어진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보기 드물게 다른 인종들과 함께 예배드렸다는 사실을 통해 이것이 입증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세이모어의 유산인 성령의 열매로 인한 것이었다. 이 양자는 모두 로스엔젤레스 부흥운동의 중요한 측면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복음전파에 대한 책임으로 인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지만, 오순절주의자들은 그 부흥운동에서 강조되는 또 다른 측면 즉 화해의 메시지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만 한다.



5. 세계(世界)속 하나님의 성회 현황

미 하나님의 성회는 지금 창립 100주년을 맞이했는데, 교단 창립당시에는 불과 300여명이 모여 교단을 조직하였지만, 미 하나님의 성회 제44차 총회(장소: 오레곤주 포트랜드) 회의록에 나타난 기록에 의하면, 교회수는 11,353개 교회, 교역자는 30,524명이고 신도수가 220만명이며, 124개국에 1,633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24개국에 세워져있는 하나님의 성회 총교회수는 137,092개 교회이며 교역자는 133,960명이고 신도수는 21,593,375명에 이르고 있다. 그 총회의 중요 의제는 ‘십년간의 추수운동(a decade for harvest)'이었다.

주님께서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에 주후 2천년까지의 앞으로 십년간에 미국내에서 500만명의 영혼을 구원해 내자는 것이다. 세계에서 하나님의 성회가 가장 강세를 보이고 있는 나라는 브라질(Brazil)이다.

나라마다 상황이 다른데 미국에서는 침례교가 강세이고 독일에서는 루터교가, 영국에서는 성공회가, 로마에서는 카톨릭이, 한국에서는 장로교가 강하듯이 브라질에서는 하나님의 성회가 강력한 교세를 지니고 있다. 성도들이 성령세례를 받고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노방에서 담대하게 전도하므로 전도폭발이 일어나 브라질에서 900만명의 하나님의 성회 신자가 주님을 섬기고 있다. 이는 오직 성령의 권능에 의한 것인데 초대 오순절교회에 나타났던 성령의 역사가 20세기에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선교의 영이신 성령께서 20세기초에 남종과 여종에게 성령세례를 물붓듯 부어 주시므로 선교의 뜨거운 열심이 불붙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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